5단위. 고린도전서 5:1–13
음행 사건과 교회 권징: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한 공동체로 서라
고린도전서 5장은 1–4장의 신학이 실제 교회 문제 속으로 들어가는 첫 장면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설명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성전 안에서 공공연히 용납되고 있는 심각한 죄를 다룹니다. 문제는 한 개인의 음행만이 아닙니다. 더 깊은 문제는 그 죄를 두고도 교회가 애통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해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단락은 교회의 거룩성을 말할 때 두 극단을 동시에 배격합니다. 첫째, 죄를 은혜의 이름으로 방치하는 방임을 배격합니다. 둘째, 교회 밖 세상과의 접촉을 모두 끊어야 한다는 분리주의를 배격합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형제라 일컬어지는 자의 공공연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를 다루라고 명하지만, 세상 사람들과의 일상적 접촉 자체를 금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의 중심은 권징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선언이 전체 단락의 속죄론적 중심입니다. 교회는 권징을 통해 자기 의를 과시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새 덩어리가 된 공동체답게 묵은 누룩을 버리는 공동체입니다.
중심 명제: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으므로, 교회는 은혜의 이름으로 죄를 방치하지 말고 애통함과 주 예수의 권위 아래 권징을 시행하여,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5:1
개역한글 본문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내가 너희 가운데 있는 일을 들었다. 이것은 사소한 약점이나 은밀한 실수가 아니라, 교회 전체가 알아야 할 만큼 공공연한 죄이다. 너희가 세상의 지혜와 말의 능력을 자랑하면서도, 이방인 가운데서도 부끄럽게 여길 일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두고 있다. 너희는 자유를 말하지만, 그 자유가 거룩을 무너뜨리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묵은 누룩을 용납할 수 없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레위기의 성결법은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의 풍속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의 거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약의 교회는 율법의 의식적 경계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한다는 언약적 원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이 받습니다.
조직신학
이 구절은 죄론, 성화론, 교회론을 결합합니다. 죄는 단지 개인의 사적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의 거룩성과 증언을 훼손합니다. 성화는 내면 경건만이 아니라 몸, 관계, 가정, 공동체 질서를 포함합니다.
역사신학
교회는 역사 속에서 공적이고 중대한 죄를 다루지 않는 공동체가 결국 복음의 거룩한 증언을 잃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경험했습니다. 건강한 교회 전통은 복음의 은혜와 교회의 권징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았습니다.
학문·목회 적용
교수와 연구자는 고린도전서 5장을 단지 고대 성 윤리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교회의 존재론, 죄의 공공성, 은혜와 거룩의 관계, 공동체 책임의 문제가 한데 묶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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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2
개역한글 본문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너희의 문제는 죄인이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죄 앞에서 울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교만해져 있다는 것이 더 두렵다. 너희는 관용을 자랑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거룩을 잃은 교만이 되었다. 너희는 통한히 여겼어야 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을 행한 자를 공동체의 인정된 교제에서 물리쳤어야 했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구약의 선지자들은 백성의 죄 앞에서 애통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회개, 예레미야의 눈물, 다니엘의 중보 기도는 언약 공동체의 죄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 애통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조직신학
권징은 교회론의 주변 항목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성과 목양의 한 형태입니다. 참 교회는 말씀과 성례만이 아니라, 그 말씀과 성례에 합당한 거룩의 질서를 보존해야 합니다.
역사신학
역사 속에서 권징이 사라질 때 교회는 흔히 세속화되었고, 권징이 사랑 없이 시행될 때 교회는 폭력적 제도로 굳어졌습니다. 성경적 권징은 애통과 거룩, 진리와 회복을 함께 붙듭니다.
학문·목회 적용
학문적 공동체도 죄와 오류 앞에서 냉소나 정파적 공격이 아니라 애통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의 거룩을 연구하는 사람은 먼저 죄를 슬퍼하는 신학적 감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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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3
개역한글 본문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내가 지금 몸으로는 너희 곁에 없지만, 사도적 책임에서 너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나는 이 일을 하나님 앞에서 이미 판단하였다. 이것은 숨은 동기를 캐내려는 월권적 판단이 아니다. 너희 가운데 공적으로 드러난 죄에 대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의 거룩에 비추어 내리는 판단이다. 내가 4장에서 주께서 오시기까지 최종 판단을 금한 것은 이런 명백한 죄를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모세와 선지자들은 백성의 죄를 하나님 말씀의 빛에서 판단했습니다. 신약 교회도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매고 푸는 책임을 받았습니다. 이 판단은 구원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아래 공동체를 돌보는 행위입니다.
조직신학
교회 권위는 자율적 사법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종속된 봉사적 권위이며, 말씀의 기준에 따라 공적 신앙 고백과 삶의 질서를 분별하는 권위입니다.
역사신학
교회는 오래전부터 공적 죄와 이단적 가르침을 다룰 때 사적 추측이 아니라 증거와 공적 절차와 말씀의 기준을 중시해 왔습니다. 이것은 권징을 폭력에서 보호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학문·목회 적용
현대 교회와 학계는 “판단하지 말라”를 무분별한 관용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분별은 숨은 마음을 정죄하지 않으면서도 공적 죄와 거짓을 다룰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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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4
개역한글 본문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이 일은 비밀스러운 보복이나 개인적 배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모여야 한다. 그리고 그 모임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사도로서 너희와 함께 있지만, 결정적인 능력은 내게 있지 않고 우리 주 예수께 있다. 교회의 권징은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그리스도의 임재와 권위와 능력을 의지하여 시행되어야 한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했습니다. 신약에서 교회의 공적 행위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행하시는 주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조직신학
교회론에서 권징은 그리스도의 왕권과 연결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 아래 매고 푸는 사역을 수행하지만, 그 권위는 항상 말씀에 의해 제한되고 목양적 목적에 의해 규정됩니다.
역사신학
공의회, 치리회, 교회 회의의 성경적 전제는 교회의 공적 판단이 개인의 카리스마나 사적 권력이 아니라 말씀과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학문·목회 적용
권징을 다루는 목회 신학은 절차적 정당성과 영적 목적을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절차 없는 열심은 폭력이 되고, 영적 목적 없는 절차는 행정으로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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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5
개역한글 본문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내가 말하는 권징의 목적은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와 보호가 드러나는 영역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계속 그 교제 안에서 인정하는 것은 그에게도, 교회에도 사랑이 아니다. 그를 사단에게 내어주는 것은 그가 자기 죄의 무서움을 깨닫고 육신의 교만과 죄의 지배가 무너져,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는 엄중한 처방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구약에서 진영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공동체의 정결을 보존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팎의 질서를 통해 회개와 회복의 목적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조직신학
이 구절은 권징, 성도의 견인, 종말론적 구원, 교회의 열쇠 권세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권징은 구원의 공로가 아니며, 회개로 부르는 은혜의 수단적 기능을 가집니다.
역사신학
역사 속에서 출교와 회복의 문제는 교회가 반복해서 씨름한 주제입니다. 성경적 전통은 출교를 최종 저주가 아니라 회개의 필요성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엄중한 목양 행위로 이해해 왔습니다.
학문·목회 적용
목회 현장에서 권징은 반드시 구원과 회복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권징을 행사하는 공동체는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도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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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6
개역한글 본문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너희가 자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는 자유와 지식과 은사를 자랑했을지 모르나, 죄를 방치하는 자유는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 누룩은 작아 보여도 온 덩어리에 퍼진다.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용납된 죄는 한 사람의 문제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의 판단과 감각과 거룩을 바꾸어 놓는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아간의 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죄의 공동체적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신약의 교회도 한 몸이므로, 한 지체의 공적 죄를 방치하는 것은 전체 몸의 거룩과 증언을 훼손합니다.
조직신학
죄론은 개인 행위의 목록으로만 축소될 수 없습니다. 죄는 구조와 문화와 공동체의 관용 속에서도 작동합니다. 성화론은 개인 윤리와 공동체 질서를 함께 다룹니다.
역사신학
교회가 공적 죄를 방치하면서도 은사와 지식과 제도적 성취를 자랑할 때, 역사적으로 그 교회는 내적 부패를 은폐하는 종교적 성공주의에 빠졌습니다.
학문·목회 적용
신학교와 교회 기관도 “적은 누룩”의 원리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작은 비윤리, 작은 표절, 작은 권력 남용, 작은 은폐가 반복되면 공동체 전체의 진리 감각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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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7
개역한글 본문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너희가 묵은 누룩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너희가 스스로 깨끗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너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누룩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미 받은 정체성에 합당하게 새 덩어리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 그분의 피로 구속받은 공동체가 애굽의 누룩을 품은 채 잔치할 수는 없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출애굽기의 유월절, 누룩 제거,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교회의 새 삶 안에서 성취됩니다. 구속은 단순한 사면이 아니라 옛 주인에게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사는 새 출애굽입니다.
조직신학
이 구절은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은 속죄의 조건이 아니라 속죄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교회의 윤리적 명령의 근거입니다.
역사신학
교회는 오래전부터 그리스도를 참 유월절 어린양으로 고백해 왔습니다. 이 고백은 단지 절기 해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새 백성의 거룩한 삶을 함께 묶는 신앙 고백입니다.
학문·목회 적용
윤리를 가르칠 때 그리스도의 희생을 중심에서 제거하면 도덕주의가 됩니다. 반대로 속죄를 말하면서 묵은 누룩을 버리라는 명령을 침묵하면 값싼 은혜로 기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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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8
개역한글 본문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으므로, 우리의 삶 전체가 새 명절의 삶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묵은 누룩, 곧 옛 삶의 악과 악독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외적 절기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시작된 새 창조의 공동체가 매일 드리는 거룩한 삶의 예배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무교절은 출애굽 백성이 옛 애굽의 상태를 뒤에 두고 급히 떠난 사건과 연결됩니다. 신약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죄의 옛 질서에서 나와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종말론적 출애굽 백성입니다.
조직신학
성화는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을 모두 가집니다. 묵은 누룩을 버리는 것과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사는 것이 함께 필요합니다. 죄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새 삶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역사신학
성찬과 부활절 전통에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유월절의 성취로 고백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예전적 기억에 그치지 않고 교회의 윤리적 정결과 공동체적 진실성을 요구합니다.
학문·목회 적용
교회의 거룩을 가르칠 때 “하지 말라”만 남기면 복음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바울은 누룩을 버리라고 하면서 동시에 명절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성경적 거룩은 그리스도의 잔치에 합당한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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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9
개역한글 본문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쓴 일이 있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내가 말한 분리는 세상 속에서 죄인들을 만나지 말라는 분리가 아니다. 내가 다루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제라 일컬어지면서도 공공연한 죄 가운데 회개하지 않는 자를 교회가 정상적 교제로 인정하는 문제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이스라엘은 열방과 구별되었지만 열방을 향한 빛의 사명을 가졌습니다. 신약 교회도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았으나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구별과 사명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조직신학
정경론과 계시론의 관점에서, 사도적 사역의 모든 말과 글이 동일하게 정경으로 보존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믿음과 삶에 충분한 말씀을 성경 안에 보존하셨습니다.
역사신학
교회는 역사 속에서 세상으로부터의 거룩한 구별과 세상을 향한 선교적 참여 사이의 균형을 반복해서 고민했습니다. 본문은 수도원적 철수와 세속적 동화 양쪽을 모두 교정합니다.
학문·목회 적용
성경 본문의 수용사는 종종 문맥에서 분리된 명령이 어떻게 오해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교수와 설교자는 단어의 강도만이 아니라 바울의 논증 전체를 따라 해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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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10
개역한글 본문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나는 너희에게 세상 사람들과의 모든 접촉을 끊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하려면 너희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너희는 고린도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부름받았다. 죄인들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거룩이 아니다. 죄를 인정하고 닮아가는 것이 문제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공동체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아브라함은 열방 가운데 살았고, 이스라엘은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부름받았으며,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성경의 구별은 선교를 폐지하지 않고 오히려 선교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조직신학
교회론은 가시적 교회의 경계와 세상 속 사명을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성화론은 접촉 금지가 아니라 마음과 행위와 공동체 인정의 문제를 다룹니다.
역사신학
교회사는 세상으로부터 철수하려는 경향과 세상에 동화되려는 경향 사이의 긴장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성경적 구별이 세상 도피가 아니라 세상 속 증언임을 말합니다.
학문·목회 적용
공공신학과 선교신학은 이 구절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도덕적 오염원으로만 보면 선교를 잃고, 세상의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거룩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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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11
개역한글 본문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내가 말하는 것은 형제라 일컬어지는 자에 관한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면서도 음행과 탐욕과 우상숭배와 모욕과 술 취함과 토색 가운데 회개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그를 정상적 형제로 인정하는 교제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 함께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교제의 인정이다. 사랑은 죄를 형제의 표지처럼 승인하지 않는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성경에서 식탁 교제는 언약적 친교와 인정의 표지가 됩니다. 유월절 식탁, 화목제, 예수님의 식탁 교제, 주의 만찬은 모두 교제가 단순한 사회적 행위 이상임을 보여 줍니다.
조직신학
이 구절은 교회의 가시적 경계, 성례의 분별, 권징, 성화의 열매를 함께 다룹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지만, 회개 없는 죄를 신앙의 정상 상태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역사신학
성찬 참여와 교회 권징은 역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식탁이 은혜의 식탁이면서도 분별 없는 참여를 허락하는 무차별적 사회 행사가 아님을 고백해 왔습니다.
학문·목회 적용
교회가 성 윤리만 강조하고 탐욕과 착취와 언어 폭력을 침묵한다면 본문을 선택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교수와 목회자는 바울의 죄 목록 전체를 신학적으로 정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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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12
개역한글 본문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내가 교회 밖 사람들의 삶을 교회의 권징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러나 교중 사람들, 곧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희가 분별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세상을 향해서는 심판자의 자리에 앉고, 교회 안의 공적 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면 질서가 뒤집힌 것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언약 공동체는 내부의 거룩을 요구받았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열방의 심판자이십니다. 신약에서 교회는 열방을 강제적으로 치리하는 국가가 아니라 복음을 증언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조직신학
이 구절은 교회의 권한과 한계를 정합니다. 교회의 권세는 말씀 사역, 성례, 권징을 통해 가시적 공동체를 돌보는 데 있으며, 하나님의 최종 심판권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역사신학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다룬 역사적 논의는 이 구절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교회가 세상 권력을 교회 권징의 방식으로 다스리려 할 때 혼란이 생기고, 반대로 교회 안 질서를 포기할 때 세속화가 일어납니다.
학문·목회 적용
공공 윤리를 가르칠 때 교회는 자기 성찰을 앞세워야 합니다. 교회의 대사회적 발언은 내부 거룩과 회개를 동반할 때 더 성경적 설득력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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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13
개역한글 본문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바울의 보충 설명 형식
교회 밖 사람들은 하나님께 맡기라. 그러나 교회 안에서 형제라 일컬어지면서 공적으로 회개하지 않는 악한 자에 대해서는 너희가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그를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이것은 사람을 미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죄를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적 선언이다. 이 엄중한 행위도 마지막 목적은 그가 회개하여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는 것이다.
전체 성경·성경신학
신명기의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는 언약 공동체의 거룩을 위한 반복 명령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새 언약 공동체 안에서 적용합니다. 교회의 거룩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구속받은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조직신학
이 구절은 교회의 표지, 권징, 성화, 성례의 경계, 종말론적 판단을 통합합니다. 외인은 하나님께 맡기고, 교회 안의 공적 죄는 말씀에 따라 다루는 것이 교회의 제한된 권위입니다.
역사신학
역사적으로 교회가 출교를 남용했을 때 복음의 목양성이 훼손되었고, 출교를 포기했을 때 교회의 거룩한 경계가 흐려졌습니다. 본문은 양쪽 모두를 경계합니다.
학문·목회 적용
고등 신학 교육에서 권징은 행정 규정이 아니라 복음과 교회론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권징론은 그리스도의 희생, 성령의 성전, 성도의 회복, 공동체의 거룩을 통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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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위 종합: 고린도전서 5:1–13
고린도전서 5장은 교회의 거룩이 추상 교리가 아니라 공적 죄 앞에서 애통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분별하며,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합당하게 묵은 누룩을 버리는 공동체적 순종임을 보여 준다.
단락 논증 지도
- 5:1–2 — 교회 안에 이방인도 부끄럽게 여길 음행이 있으나, 고린도 교회는 애통하지 않고 교만합니다. 바울은 죄 자체와 죄를 용납하는 공동체적 교만을 함께 책망합니다.
- 5:3–5 — 바울은 공적으로 드러난 죄를 이미 판단했으며, 교회가 주 예수의 이름과 능력 아래 모여 권징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주 예수의 날의 구원입니다.
- 5:6–8 —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이, 공적으로 용납된 죄는 공동체를 오염시킵니다. 교회는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하여 묵은 누룩을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 5:9–11 —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의 모든 접촉을 금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형제라 일컬어지는 자가 회개하지 않는 공적 죄 가운데 있을 때, 교회가 그를 정상적 교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 5:12–13 — 외인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지만, 교회 안의 사람들은 교회가 말씀에 따라 분별해야 합니다.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는 명령은 교회의 거룩한 경계를 세우는 엄중한 권징입니다.
전체 성경 관점의 핵심 흐름
언약 공동체의 거룩
레위기와 신명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열방의 풍속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의 거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 교회에 적용합니다.
유월절과 새 출애굽
출애굽의 유월절 어린양과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교회의 새 삶 안에서 성취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새 출애굽 백성입니다.
누룩의 공동체적 영향
성경은 죄가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판단과 예배와 증언을 오염시킬 수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바울은 이를 “적은 누룩”의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왕권
권징은 사람의 이름이나 집단의 권력으로 시행되지 않고 주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시행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
교회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세상과의 접촉을 금하지 않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회개 없는 죄를 정상적 교제로 인정하는 일을 금합니다.
주 예수의 날
권징의 목적은 현재의 체면이나 제도 보존이 아니라 주 예수의 날에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엄중한 판단은 종말론적 회복을 향해야 합니다.
조직신학적 통합
죄론
죄는 개인의 사적 행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공적으로 용납된 죄는 공동체의 거룩한 감각을 무너뜨리고, 교회의 증언과 예배를 오염시킵니다.
그리스도론과 속죄론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교회의 거룩한 윤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근거하며, 십자가 없는 권징은 도덕주의가 됩니다.
성화론
“너희는 누룩 없는 자”라는 신분과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는 명령이 함께 주어집니다. 성화는 이미 주어진 정체성에 합당하게 되는 은혜의 과정입니다.
교회론
교회는 완전한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회개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회개 없는 공적 죄를 정상적 형제 교제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권징론
권징은 보복이나 낙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시행되는 목양적 행위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거룩과 죄인의 회복을 동시에 목표로 합니다.
종말론
권징의 목표는 “주 예수의 날”의 구원입니다. 현재 교회의 판단은 최종 심판을 대체하지 않고, 최종 심판의 빛 아래 회개를 촉구하는 임시적이고 목양적인 질서입니다.
역사신학적 의미
고린도전서 5장은 교회의 권징이 왜 교회의 본질적 과제였는지를 보여 주는 핵심 본문입니다. 교회가 권징을 포기하면 은혜의 이름으로 죄를 정상화하기 쉽고, 권징을 남용하면 거룩의 이름으로 사람을 파괴하기 쉽습니다. 성경적 전통은 이 두 오류를 모두 경계하면서, 권징을 말씀과 성례와 함께 교회를 세우는 목양적 질서로 이해해 왔습니다.
이 본문은 또한 교회와 세상에 대한 역사적 오해를 교정합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철수하는 수도원적 공동체가 아니며, 세상과 구별 없는 종교 사회도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되, 자기 안에서는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 합당한 거룩을 보존해야 합니다.
본문이 배격하는 오류
- 은혜를 핑계로 한 방임 — 그리스도의 은혜를 죄의 공적 용납으로 바꾸는 오류.
- 애통 없는 권징 — 죄 앞에서 울지 않고 자기 의와 분노로만 대응하는 오류.
- 권징 없는 교회론 — 교회를 성령의 성전이라고 말하면서 공적 죄를 정상적 교제로 인정하는 오류.
- 속죄 없는 도덕주의 —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니라 공동체의 체면과 도덕 우월감을 근거로 거룩을 말하는 오류.
- 분리주의 — 세상 사람들과의 모든 접촉을 끊는 것을 거룩으로 오해하는 오류.
- 세속적 동화 — 세상 속에 살라는 명령을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라는 허가로 오해하는 오류.
- 선택적 윤리 — 성적 죄만 다루고 탐욕, 토색, 후욕, 술 취함, 우상숭배를 가볍게 여기는 오류.
- 최종 심판의 월권 — 교회의 제한된 권징을 하나님의 최종 심판과 혼동하는 오류.
교수·PhD 세미나용 토론 질문
- 5:1–2에서 바울이 개인의 죄보다 교회의 반응을 중대하게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 고린도전서 4:5의 판단 금지와 5:3의 이미 판단했다는 선언은 어떻게 조화되는가?
- “사단에게 내어준다”는 표현은 교회론, 영적 전쟁, 권징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 5:7의 “너희는 누룩 없는 자”와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는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라는 속죄론적 선언이 교회 윤리와 권징의 근거가 되는 방식은 무엇인가?
- 5:10은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서 분리주의와 동화주의를 어떻게 동시에 비판하는가?
- 5:11의 죄 목록은 현대 교회가 선택적으로 윤리를 적용하는 문제를 어떻게 폭로하는가?
- 5:12–13에서 외인과 교중 사람을 구분하는 판단 질서는 공공신학과 교회 권징론에 어떤 경계를 제공하는가?
강의용 핵심 문장: 고린도전서 5:1–13에서 바울은 교회의 거룩을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시킴으로써, 은혜 없는 도덕주의와 거룩 없는 방임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주해
바울은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문을 무책임하게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알려진 심각한 상황을 다루는 사도적 판단입니다. “그 아비의 아내”는 아버지의 아내, 곧 계모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관계는 구약 율법에서도 명백히 금지되며, 언약 백성의 거룩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죄로 여겨졌습니다.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이방 사회를 도덕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 불리는 교회가 일반 사회에서도 수치로 여길 만한 일을 용납하고 있다는 역설을 드러냅니다. 고린도 교회의 신학적 실패는 여기서 분명합니다. 그들은 영적 지식, 은사, 자유, 지도자 선호를 자랑하면서도 교회의 거룩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17에서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5:1의 음행 사건은 개인 윤리 문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공적으로 더럽혀지는 사건입니다. 이 구절은 성경적 교회론이 성적 윤리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